Photography for HATCHIE’s pop-up installation.

The project envisioned an imaginary landscape where butterflies and small insects briefly pause, brought to life through sculptural food styling, a lotus tea pond, and collaborative nail art.


복잡한 서울 지하철 노선도, 한껏 줄여버린 역 이름도 약간은 적응이 된 지금, 갓 졸업을 하고 서울에 상경했던 24년도의 어리숙했던 나를 자주 떠올린다. (동역사에서 만나자는 말을 듣고 난 무슨 불국사, 조계사이런 절인줄…) 한줄짜리 노선이 전부인 대전과 테토력의 정수인 천안 버스만 익숙했던 내게 서울은 굉장히 조밀하고 복잡한 세상으로 보였다. 태생이 느릿한 충청도 여자인 나는 말도 행동도 이해도 매번 느린 편인데, 과연 이 속도감있는 공간에 내가 적응할 수 있을까 고민을 하곤했다. 특히나 멋있는 사람들에 대한 동경과 질투심으로 자격지심을 느끼는 나인데, 이 수많은 멋쟁이들이 가득한 서울, 괜찮을까 싶었다. 그때의 나는 빨리 이 속도감 있는 공간에 탑승해서 무작정 달리고싶은 생각 뿐이었던 것 같다.

1년 간의 신문사에서의 생활은 지난 대학 생활 5년간 성실히 수행했던 자기 이해를 박살낸 끔찍하고 특별한 경험이다. 33층의 거대한 건물과 끝내주는 뷰의 화캉스를 즐길 수 있었던 그곳은 이 빠른 도시에서 이상하게 시간이 멈춘듯한 곳이었다. 지독하게 고여있는 업무 시스템과 그걸 낯선듯이 바라보던 나, 그런 나를 또 낯선듯이 바라보던 직원들. 서로 어리둥절한 상태였달까… 동기 따위는 없던 망해가던 제작부는 편집부와 기자들의 기싸움 속에서 꽤나 머쓱한 포지셔닝에 있었다. 가끔 편집자분과 기자분이 싸우시면, 그냥 바보처럼 컴퓨터만 쳐다보며 지면에 작업할 타이밍의 각만 보고있었다. 이 상황이 억울한 난 그저 취업을 빨리 하고싶었던, 지류를 좋아하는 갓 졸업한 바보였다.
묘한 기자정신과 짜증나는 곤조, 경력이 내 인생보다 오래된 직원분들은 나를 받아들이기엔, 그리고 내가 그들을 받아들이기에는 간극이 너무 컸다. 그곳에서 난 굉장히 작고 소심한 여자였다.
1년의 생활이 지났을 시점에 다른 회사와 똑같이 우리는 서로에게 상당히 무관심한 상태에 이르렀지만, 난 퇴사를 했다. 퇴사를 한다고 할때, 엄마랑 아빠는 더이상 그런 꿀직업, 꿀직장으로 넌 더이상 돌아갈 수 없을거다라는 악담아닌 악담을 했고. 사실상 뭐 팩트가 됐다. 상당히 거지꼴이 된 지금이니 할말은 없다. 사실 후회는 가끔하는데, 진심은 아니다. 그거면 된거 아닌가? 자꾸만 묘하게 노선을 트는 나를 보며, 엄마는 얘가 왜이럴까 싶은 눈빛을 보내곤 하지만, 맹목적인 응원과 지지만 받고싶으니 이외의 것들은 무시한다는 태도의 나를 보곤 결국 알아서해라 니 인생.. 내 인생은 아님으로 태도를 고친다.

이 생각만해도 속이 답답해지는 1년 간의 근무에서도 놀랍게도 얻은 것이 있다.

신문은 언젠가부터 1호선 할아버지들이나 관심이 있는 매체가 되어버렸고, 늘 신문을 읽던 우리집도 쓰레기가 되는게 싫다고 구독을 끊어버렸고, 거대하다 못해 맥아리 없는 종이쪼가리를 타인의 바운더리까지 침범하는걸 극혐하는 시대가 됐지만, 그 비주류가 되어버린 종이가 얼마나 많은 품이 들어가는지 알게된 순간이 좋았다.

여와 야의 한자를 알게되었다. 문화면의 재미를 알게됐다. 편집자들의 멋있음을 알게됐다. 지나버렸다고 생각한 옛 방법들이 누군가에게는 현재진행형의 삶의 방식인 것을 보는게 좋았다.

더이상 신문도, 그 당시 살던 청량리의 구옥의 집도 돌아가고싶지는 않지만, 그 비실비실 너덜너덜한 신문의 정교함과 치열함이 좋다. 기차소리가 들리던 청량리의 구옥집과 집으로 돌아와 복기해보던 신문은 서울이라는 도시의 다양성을 실감나게 맛보게 해준 경험이었다. 서울 뿐만 아니라, 세상에는 상당히 작고 보잘것 없어 보이는 것들을 분투하며 작업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것을 즐기는 사람들이 있는게 느껴졌을 때가 좋았다.

이 외면 받는 어떤 것들이 세상을 바꾸고, 이야기하고, 나누던 것들인게 좋다. 무엇보다 지금의 모든 것들이 언젠가는 외면 받게 된다는 사실이 느껴지는게 좋다. 그치만 그 안의 글과 사람은 멸종되지 않는다는 것이 좋다.
물론 난 너무나 엠제트이기 떄문에 녹아들 수 없었지만, 그것들이 주는 비주류의 매력은 배꼽때처럼 추억하게된달까…

여전히 느려터진 나는 아직도 삶의 갈피를 못잡고 그 누구보다 뒤처지는 인생을 살고있다.
서울에 온다고 서울사람이 되는게 아니다. 나의 느려터진 뿌리는, 군자라는 느려터진 동네로 오게했고 나만의 대전을 또 만들어버렸다. 그치만, 다시 대전으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더 이상 그 동네에게서 편안함을 느끼지 못할것이다. 난 배달 중 섞여버린 반반치킨처럼 느림빠름 단순복잡의 혼종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느림의 본질도 빠름의 배움도 사라지진 않는다는 사실이 참 사람 돌아버리게하는데, 사실 그것도 좋다.

작년 9월 이후로 나는 한 남자를 기다리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놀라울 정도로 모든 것은 자연스럽게 이어져있다.

새벽 세시의 공항버스, 미어터지는 인천공항 제2터미널, 잘 쓰지도 않았던 카메라 배터리로 인한 첫 수하물 재확인, 세상에서 제일 먼 200번대 저가항공, 옴짝달싹 못하는 이코노미 세 시간을 견디고 홀로 도착한 타이중은 예상대로 눅눅하고 빈티지 냄새가 가득했다.
정말 작은 도시의 타이중의 시작은, 그래 솔직히 무서웠다. 대만의 대전이라더니 완전히 속았다.
지겨운 캐리어의 무게와 낯선 공기의 두려움을 웃음으로 덮어줄 동행자가 없는 여행은 오직 지독시리 진지한 나와 내가 느낀 감정만 있었기 때문이다. 잔뜩 긴장해 어깨가 굳어버린 28세 무직 겁쟁이 158cm의 여성은 낯섦을 유머로 넘길 여유가 한 톨도 없었다. 꼬롬한 음식 냄새와 낙후되고 습기 가득한 건물들은 두려움을 걷잡을 수 없이 크게 만들었고, 1보 1노숙자가 곁들여진 구시가지 동네의 호텔과 맛없는 미슐랭은 홀로 여행이라는 선택지를 후회하게 만들었다. 낯선 그들의 말을 나는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고 그 도시의 축축함이 낯설었다. 나는 그때 내 스스로의 선택이 당황스러워 어찌할 바를 몰랐다. 도쿄나 갈 것이지 왜 타이중이었을까.. 왜 처음 와본 도시였을까.. 왜 이 호텔이었을까.. 왜 지금이었을까.. 왜 혼자였을까.. 멍하니 거리를 걸으며 우울한 비를 맞으며 곱씹었다.

하지만 맛은 없어도 탄수화물이 가득했던 미슐랭에서의 식사와 첫 시작이 찜찜하면 내내 찜찜하니 얼른 자리를 옮기라는 오빠의 말이 묘하게 내게 녹아들어 훌훌 털고 시작한 새로운 자리에서의 경험은 남은 여행을 충만함으로 가득하게 만들어줬다.
다시금 맡겼던 캐리어를 찾고, 새로운 숙소를 구하고, 멍청 비용을 놓아주고, 다정하지 않은 타이중의 도로와 나의 캐리어와의 밀당을 필라테스로 다진 근육으로 중재하고, 흐를듯한 약간의 눈물을 떨어지는 빗방울과 함께 정리했다. 이방인이라는 역할이 주는 즐거움을 위한 기회비용이라고 생각하며 뇌를 주무른 게 맞다.

여행을 떠나기 전 꼭 가고 싶었던 곳들은 Tcam (Taichung Art museum)과 동해대학교, 하고 싶었던 것은 유바이크를 타고 동네를 돌아다니며 가는 로컬 카페에서의 커피, 러닝 후의 대만식 아침식사 정도였는데, 이 점에 있어서는 내 스스로를 내가 참 잘 알았던 것 같다. 넉넉한 공간과 약간의 카페인이면 손쉬운 만족을 하는 단순함을 나는 안다.

여행을 떠나기 전 찾아봤던 길고 지루했던 3시간짜리 영화, 에드워드 양 감독의 하나 그리고 둘은 어쩌다 보니 마음 깊게 스며들었다. 가끔은 영화 자체의 감동보다, 영화를 바라본 나와 현상에 더 깊게 박힐 때가 있다. 하나 그리고 둘의 원제는 한 일 자 두 개를 쓴 ‘一一’ Yi Yi로 1 그리고 2가 아닌, 1 1인 셈이다. 아빠 말로는 화엄경, 즉 불교적 접근인 거 같다고 하는데 뭐 맞는지는 모르겠다. 영화는 제목을 이 숫자들을 상하로 배치하여 보여주는데, 한 일자 두 개가 아래 위로 배치되어 마치 한자 ‘二’를 쓴 것처럼 보인다. 즉 하나이면서 둘, 둘이면서 결국 하나인 것을 보여준다. 인간이라는 존재와 우리라는 관계가 삶과 죽음의 굴레가 놀랍도록 단순하게 설명되는 제목이다.
우리는, 그러니까 오빠와 나는, 돌림자로 한 일자를 쓴다.
동해대학교에 가만히 앉아 도대체 언제부터 자라기 시작해서 언제까지 살지 가늠조차 안되는 거대하고 푸르른 나무를 바라보며 일우 그리고 일영이를 낳아버린 엄마에게는 이 지독하게 닮은 두 존재가 둘이자 하나이지 않을까 싶은 생각에 잠겼다. 어떤 남자와 어떤 여자가 사랑에 빠져 낳아버린 두 개의 생명이 이렇게 다른 존재로 갈라지고 동시에 너무나 닮아있다는 게 묘했다.

​영화에서 어린 아들 양양은 자신은 타인의 전부를 보지 못하고 타인은 내가 보는 것을 보지 못한다는 애늙은이 같은 말을 하는데, 양양의 아버지 NJ는 그럴 땐 카메라로 보지 못하는 것을 남기라고 조언해 준다. 우리는 같은 사실 앞에서도 다른 진실을 얻는다. 이 점이 나는 우리가 지독한 하나라는 것, 타인과 다르다는 것, 계속 변화하는 것에 대한 허무이자 위로로 해석된다.

사진을 찍으면 진실이 누군가의 사실로 남는다. 양양의 뒤통수 컬렉션이 위로가 되는 건 나의 사실 뒤 진실, 진실 뒤 사실을 내가 아닌 누군가는 본다는 안도감일지도 모르겠다. 홀로일 때는 전부를 볼 수 없다는 것은 사실이고, 타인을 바라보며 발견된 진실은 나를 설명하는 또 다른 나이다. 사랑이 나의 존재가 타인에게 투사되어 결국은 또 다른 나를 아는 과정이라는 점 또한 비슷한 맥락 아닐까나.





대만은, 특히나 타이중은 위치도 색깔도 사람도 참으로 애매모호하다.
일본 같으면서 중국 같기도 한 게 동남아인가 싶은 이 어중띤 나라는 나라는 어중띤 인간에게 딱이다. 면접에선 융복합 인재로 떠들어 제끼는 이 어중띤 인간은 이 애매한 도시가 너무 좋다. 대전 출신이라 그런 걸까? 달콤한 빵과 이도 저도 아닌 음식, 사투리도 아닌 것이 표준어도 아닌 말투가 나를 이렇게 만든 걸까? 아무튼 그 어떠한 관점에서 보아도 새롭게 해석할 수 있는 편안한 자리는 여전히 친절했고 이런 나라를 좋아하는 나 때문에 이런 나를 좋아하는 누군가가 있지 않을까라는 조그마한 희망도 생겼다. 돌아온 서울은 지독하게도 추웠다. 재빠르고 세련된 이 공항에서 회전 초밥이 된듯한 느낌을 받았지만, 이젠 난 서울시 광진구 주민이기에 이 애매함을 놓아주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여행에서 그 어떤 다른 이득을 얻는단 말인가? 여기 아무런 꾸밈없는 벌거숭이의 내가 있다. 내가 간판도 읽을 수 없는 도시, 친근한 그 어떤 것도 다가들지 않는 이상한 문자들. 이야기를 나눌 친구도 없고 오락거리도 없다. 이국 도시의 소음이 밀려드는 이 방에서 나를 불러내어 어떤 가정이나 좋아하는 장소의 좀 더 은은한 불빛 쪽으로 데려가 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나는 잘 알고 있다. 사람을 부를까? 그래 봐야 낯선 얼굴들만 내다볼 것이다. 교회들, 황금빛의 재단과 성향, 그 모든 것이 나를 밀쳐 내던지는 일상생활 속에서는 모든 사물 하나하나가 다 내 불안을 실감하게 한다. 그리고 이제 습관들의 장막, 졸고 있는 마음을 감싸 주는 몸짓들과 말들로 짠 보자기가 서서히 걷히고 마침내 불안의 창백한 얼굴이 노출된다. 인간은 자기 자신과 정대면 한다 – 나는 묻고 싶다, 그가 과연 행복한 것인지… 그러나 바로 그런 점에서 여행은 인간에게 깨우침의 빛을 던진다. 하나의 커다란 부조화가 그와 사물들 사이에 생겨난다. 전보다 덜 단단해진 마음속으로 세계의 음악이 더 쉽게 흘러든다. 마침내 그 거대한 헐벗음 속에서는, 덩그러니 서 있는 그냥 한 그루의 나무까지도 가장 정답고 가장 연약한 이미지가 된다. 예술 작품들과 여인들의 미소, 그들의 땅속에 뿌리박은 인종들, 수 세기의 과거가 요약되어 있는 고적들, 그것은 여행이 구성하는 감동적이고도 생생한 풍경이다. 그러고 나서 하루가 끝나면 다시금 내 마음속에 영혼의 굶주림처럼 무언가 깊은 공허가 느껴지는 호텔 방]

위는 카뮈의 안과 겉, 영혼 속의 죽음이라는 글의 한 부분이다. 여행에서 돌아와 읽은 카뮈의 첫 책은 마치 운명처럼 아주 자연스럽게 이건 네가 읽어야 할 부분이야라고 말하듯 곁에 왔다. 1936년 프라하에서 홀로 보낸 나흘 밤의 기록을 담은 글에서는 여행지에서의 낯섦과 두려움, 피곤함과 해방감, 불안함을 느낄 수 있었는데 일찍이 식사를 마치고 8시 반이면 드러눕거나 글을 쓰는 카뮈의 이 행동이 삭막한 호텔방에 돌아와 피곤함에 지쳐 젖은 빨래처럼 누워있는 내 모습과 겹치는 게 괜한 동질감이 들었다. 카뮈는 수도원에서 느낀 침묵 속에서 해방감에 가까운 어떤 느낌을 맛본 후 위의 글을 단숨에 적었다고 한다. 이 카뮈의 과장 없는 있는 그대로의 글 속에서 이 여행에서 느낀 감정을 위대한 작가의 표현으로 얻을 수 있었기에 적어본다.